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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 쉽게 행복을

His 제이 2025. 3. 11. 22:11

 
행복을 바란다는 말을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행복이라는 가치 앞에서 헐값에 팔리는 애타는 마음들을 본 적이 있다. 내 이십 대의 행복은 주변 모두를 불행하게 했다. 내가 나의 행복을 추구할수록 아버지의 건강은 나빠졌다. 몇 년간을 괴로워하며 서로가 납득할 만한 행복이 있지 않을까 찾아봤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그때 내 행복은 죄책감을 수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아버지보다 더 불행해졌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바랄 때, 그 이유가 너의 행복이라는 말은 종교 전쟁의 이유처럼 강력한 명분이 된다. 성스러운 전쟁이라고 자칭하는 종교 전쟁이 무서운 이유는 내가 행하는 악이 선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상처를 주고 나서 아련한 표정으로 자주 뱉는 <너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말은 너무나도 쉽게 착한 표정으로 가닿는다. 당사자가 원하는가 원하지 않는가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 너의 행복을 위해서니까. 심지어는 괴로워하는 당사자를 보고도 주변에서는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들은 사람을 타이른다. 너의 행복을 위한 거라니까 힘들어도 좀 참으라니. 그 말들이 내 행복을 방해하는데. 그렇게 옆에서 거드는 사람들은 철이 없어 아직 모른다는, 어려서 그렇다는 이해하는 듯한 너그러운 표정의 독선을 숨기지 않는다. 좇을수록 우리를 더 멀리 쫓아내는 그 단어. 행복.
 
내가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는 행복은 많지 않다. 행복했던 기억 속에서 내가 했던 행동이나 상황을 재현해 볼 뿐이지 행복한 감정은 늘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다. 웃음이나 즐거움의 호르몬이 나오는 것을 보고 쉽게 행복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고 문득 행복했었구나 하고 떠오르면 그것이 행복이다. 그래서 행복은 늘 결과론적이다. 정의 내릴 수 있는 사람도, 지금이라고 짚어줄 사람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람도 없는데 우리 모두는 너무 쉽게 행복을 바라고 강요해 온 것은 아닐까.
 

문상훈,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중에서

 
 
 
 
나는 꼭 행복해야만 해,라는 강박이 우리를 얼마나 시들게 하는지...
 
너의 행복을 위해서야,라고 하는 말이 사실은 다른 이유일 때가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솔직해져야 해.
 
 
 
 
 
 
 
 
 

- 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