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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사람

His 제이 2025. 3. 21. 21:25

 
내가 생각하는 적당함은 '감당할 수 있는 선이 맞춰진, 그 선을 내가 잘 유지하고 있는 조화로운 상태'에 가깝다. 물론 이 상태를 추구하다 보면 가끔은 그 비중이 우연히 반반에 가까워질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내게서 뗄 수 없는 것들을 조화롭게 만드는 데 있다. 
 
자유와 구속을 예로 들어 보겠다. 데뷔 초창기에는 아이돌이라는 직업에 쏟아지는 잣대가 엄격하게 느껴져 반항 어린 마음을 가지기도 했던 것 같다. 누군가는 아무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나는 너무나 신중하게 해야 했었으니까. 그래서 그땐 자유와 구속이라는 정반대의 속성을 두고 지금보다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고 있었다. 나는 자유로운가 혹은 억압받고 있는가로 나누어 생각하며 답답해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모든 것은 두가지로 나누어 재단할 수 없고 상황에 따라 유기적으로 바뀐다. 일을 시작한 지 10년이 지날 때쯤부턴 이 사실을 스스로 체감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상황에 따라 어떤 것을 더 많이 누릴 수 있다면 그만큼 다른 어떤 것을 더 많이 내어줘야 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졌다. 그걸 알게 된 이후로는 지금 내 상태와 내가 지켜야 할 직업인으로서의 상황, 대중이 나에게 바라는 바 등을 고려해서 가장 조화로운 지점을 찾고, 이것들을 현명하게 조율하기 위해 더 애쓰게 된 것 같다.
 
적당함에 대해 생각하다가 문득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내가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았으면 좋겠어."
상자를 열기 전까지는 살아 있을 수도,  죽어 있을 수도 있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확정지어지지 않은 상태로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말이었다.
 
누군가 날 필요로 할 때는 주변에 있는 듯 존재하는 사람이었다가, 또 누군가가 날 필요로 하지 않을 때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 억지로 흐름을 거슬러 가려 애쓰지 말고 그저 적당하게 존재했으면 좋겠다.
 
 

이창섭, 「적당한 사람」 중에서

 
 
 

누군가
날 필요로 할 때는
주변에 있는 듯
존재하는 사람이었다가,
또 누군가가
날 필요로 하지 않을 때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사람이길


 
 
 

평소 내가 원하던 바와 같구나. 나 역시 원하지.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한다면 곁에 잘 있어주고, 그렇지 않을 때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삶. 나는 그들의 인생에 초대된 조연으로서 적당한 삶을 살고, 내 인생의 주연으로서 또한 적당히 살길 원해. 누군가 환호해주지 않아도 참 괜찮은 삶이었다, 내게 말할 수 있도록.. 그 정도면 돼.
 
 
 
 
 
 
 
 
 
 

- 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