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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미움받을 용기> #36더 큰 공동체의 목소리를 들으라 /기시미 이치로

His 제이 2023. 10. 9. 09:07

 

더 큰 공동체의 목소리를 들으라
 

눈앞의 작은 공동체에 집착하지 말라.
보다 '큰 공동체'는 반드시 존재한다.

 
 

 

아들러가 말하는 공동체의 개념을 받아들일 때, 곧이곧대로 우주와 무생물을 상상하면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일단 공동체의 범위를 ‘무한대’라고 생각해보라. 이를 테면 정년퇴직을 하자마자 생기를 잃은 사람이 있다. 회사라는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와 지위도 명함도 이름도 없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 즉 ‘보통’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순식간에 늙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회사라는 작은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온 것에 불과하다. 보다 큰 공동체에 여전히 속해 있음을 기억하라. 지구라는, 우주라는 공동체 말이다. 무작정 우주를 상상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공동체에만 매달리지 말고 자신이 다른 공동체, 더 큰 공동체, 이를테면 지역사회나 국가에 속해 있고, 그곳에서도 어떠한 공헌을 할 수 있다는 자각을 얻기를 바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빵 한 조각을 사고 그 대가로 동전 한 닢을 지불했다고 가정해보자. 그 지불한 동전은 빵가게 주인에게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밀과 버터의 생산자들, 그리고 밀과 버터를 운반한 유통업자들, 연료를 판매하는 업자들, 나아가서는 산유국 국민들까지 여러 사람에게 돌아간다. 줄줄이 엮여 있는 것이다.
 
 
인간은 공동체를 떠나서 ‘홀로’될 수도 없거니와 ‘홀로’살 수도 없다. 아들러가 말하는 공동체란 가정이나 회사같이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인연까지 포함한다. 그러면 왜 다수의 공동체를 의식하고, 더 큰 공동체를 의식해야하는지 생각해보자. 거듭 말하지만 우리는 모두 다수의 공동체에 속해 있다. 가정에 속해 있고, 학교, 기업, 지역사회, 국가에 속해 있다.
 
 
가령 당신이 ‘학교’라는 공동체만이 당신이 있을 유일한 곳이라고 생각한다고 해보자. 즉 학교야말로 전부고 나는 학교가 있기에 존재한다. 그 이외의 ‘나’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그런데 그 안에서 어떤 문제에 맞닥뜨리면 어떻게 될까? 집단 괴롭힘을 당하거나, 친구를 사귀지 못하거나,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애초에 학교라는 시스템에 맞지 않거나 등.
 
 
다시 말해 학교라는 공동체에서 ‘여기 있어도 괜찮다’는 소속감을 느끼지 못할 가능성을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그럴 때 학교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 당신은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더 작은 공동체, 이를테면 가정으로 도피해 그곳에 틀어박히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집 안에서 폭력을 휘두를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소속감을 얻으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때 ‘다른 공동체가 있다’ 무엇보다 ‘더 큰 공동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어떨 것 같은가? 학교 바깥에 더 큰 세계가 펼쳐져 있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그 세계의 일원이다. 만약 학교에 내가 있을 곳이 없다면 학교 ‘바깥’에서 내가 있을 곳을 찾으면 된다. 전학을 가도 되고, 자퇴를 해도 상관없다. 자퇴서 한 장으로 인연이 끊기는 공동체 따위는 없어도 그만이다.
 
 
만약 더 큰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자신이 학교에서 느꼈던 고통이 ‘찻잔 속의 태풍’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찻잔 밖으로 나오면 거칠게 몰아치던 태풍도 실바람으로 변한다. 방 안에 틀어박혀 있는 것은 찻잔 안에 머문 채 비좁은 피난처로 대피하는 것이다. 잠시 비를 피할 수는 있지만 태풍은 가라앉지 않는다.
 
 
그럴 때 염두에 둬야 할 행동원칙이 있다.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더 큰 공동체의 목소리를 들어야한다는 원칙이다. 학교라고 해서 학교라는 공동체의 상식(공통감각)으로 사리판단을 하지 말고, 더 큰 공동체의 상식을 따르라는 것이다.
 
 
가령 학교에서는 교사가 절대적인 권력자라고 하자. 그런데 그런 권력이나 권위는 학교라는 작은 공동체에서만 통용되는 상식에 불과하다. ‘인간사회’라는 공동체로 생각하면 당신도 교사도 대등한 ‘인간’일 뿐이다. 교사가 부당한 요구를 한다면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해도 상관없다. 이는 ‘나와 너’의 관계에도 해당되는데, 만약 당신이 이의를 제기해서 무너질 정도의 관계라면 그런 관계는 없느니만 못하다. 이쪽에서 끊어버리면 그만이다. 관계가 깨질까 봐 전전긍긍하며 사는 것은 타인을 위해 사는 부자유스러운 삶이다.
 
눈앞의 작은 공동체에 집착하지 말라.
보다 다른 '나와 너'
보다 다양한 '사람들'
보다 '큰 공동체'는 반드시 존재한다.
 

「미움받을 용기 」 기시미 이치로 / 고가 후미타케

 
 
 


 
 
공동체의 범위는 무한대.
우주라는 공동체를 떠올려 본다. 나는 그 세계의 일원.
 
내가 산 빵 한 봉지와 연결된 무수한 사람들을 떠올리면 신비로울 뿐이다.
그래, 우리는 보이지 않는 인연으로 연결된 존재들.
나의 안녕을 바라는 만큼 누군가의 안녕도 바래주어야 하는 이유.
 
여기 있어도 괜찮다는 소속감을 느끼지 못해도 괜찮아.
내가 공헌할 수 있는 더 큰 공동체가 있으니까. 그러니 좌절하지 말기.
두 눈 크게 뜨고 바라보면 보일 것. 
 
특히 공동체 안에서 소외되어 고통받는 이가 있다면
이 사실이 굿뉴스가 되어 주기를.
 
당신과 내가 연결되어 있어서
내가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Alfred Adler (1870 ~ 1937) 오스트리아, 정신의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