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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미움받을 용기> #37칭찬도 하지 말고, 야단도 치지 말라 /기시미 이치로

His제이 2023. 10. 11. 08:18

 

칭찬도 하지 말고, 야단도 치지 말라
 

 

인간이 남을 칭찬할 때 그 목적은 
‘자기보다 능력이 뒤떨어지는 상대를 조종하기 위한 것’이다.

 
 

과제를 분리하면서 어떻게 원만한 관계를 만들까, 즉 어떻게 서로 협조하고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시킬까 하는 점.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수평관계’라는 개념이다. 이해하기 쉽도록 예를 들어보자. 아이를 기르거나 부하직원을 가르칠 때 보통 두 가지 방법을 쓴다. 야단치는 방법과 칭찬하는 방법. 당신은 두 가지 중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양육을 비롯한 타인과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칭찬은 금물이다’라는 입장을 취한다. 물론 체벌은 당연히 금지다. 야단치는 것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이 아들러 심리학의 입장이다.
 
칭찬한다는 행위의 속내를 따져보라. 예를 들어, 내가 당신의 의견을 듣고 ‘잘했어’라고 칭찬을 했다면 당신은 어떤 느낌이 들겠는가 왠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칭찬한다는 행위에는 ‘능력 있는 사람이 능력 없는 사람에게 내리는 평가’라는 측면이 포함되어 있다.
 
저녁식사 준비를 돕는 아이에게 엄마가 “엄마를 도와주는 거야?” 착하기도 해라“하고 칭찬을 했다고 하자. 하지만 남편이 같은 행동을 해도 똑같이 말할 수 있을까? 즉 ‘장하다’ ‘잘했다’ ‘휼륭하다’라고 칭찬하는 것은 엄마가 아이를 자기보다 아래로 보고 무의식중에 상하관계를 만들려는 것이다. 즉 수직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이 남을 칭찬할 때 그 목적은 ‘자기보다 능력이 뒤떨어지는 상대를 조종하기 위한 것’이다. 거기에는 감사하는 마음도, 존경하는 마음도 일체없다. 우리가 남을 칭찬하거나 야단치는 것은 ‘당근을 쓰느냐, 채찍을 쓰느냐’하는 차이에 불과하다. 배후에 자리한 목적은 조종에 있다.
 
아들러 심리학이 상벌교육을 강하게 부정하는 것도 아이를 조종하려는 측면 때문이다. 누군가의 칭찬을 받고 싶다고 바라는 것. 아니면 반대로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것, 이는 인간관계를 ‘수직관계’로 바라본다는 증거이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온갖 ‘수직관계’를 반대하고 모든 인간관계를 ‘수평관계’로 만들자고 주장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이 아들러심리학의 근본 원리라고 할 수 있다. 대등은 곧 ‘수평’이다.
 
여기 전업주부인 아내에게 ‘한 푼도 못 버는 주제에, 돈 걱정을 해봤어, 뭘 해봤어 그만하면 호강이지 뭐가 불만이야!’라고 큰 소리 치는 남자가 있다. 참 한심하지 않은가? 경제 사정은 인간의 가치와 무관하다. 회사원과 전업주부는 일하는 장소와 역할만 다를 뿐이며 그야말로 ‘같지는 않지만 대등’한 관계이다. 아마 그런 사람들은 여성이 똑똑해지는 것, 자기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것, 당당히 자기 의견을 내세우는 것이 두려울 것이다. 전반적인 인간관계를 ‘수직관계’로 보고, 여자들이 자기를 아래로 볼까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즉 강한 열등감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열등감이란 원래 수직관계에서 생기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같지는 않지만 대등’한 수평관계에 있다면 열등 콤플렉스가 생길 여지는 없다.
 

「미움받을 용기 」 기시미 이치로 / 고가 후미타케

 
 
 


 
 
 
나의 직업은 특성상 어린아이들을 대하기 때문에 칭찬을 최대한으로 하라는 지표가 있다. 
 
사실 이것은 남용되고 무분별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적절한 칭찬이 아닌 경우도 허다하다는 것.
 
아들러의 입장을 접하기 전에는 나도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논리에 맞춰 칭찬을 많이 했다.
 
그런데 곱씹어 볼수록 칭찬에는 수평이 아닌 수직의 힘이 작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핵심은 상벌주의를 피하라는 것.
상벌주의는 상대방을 조종하기 위한 수단이므로.
 
그러니 내가 칭찬을 할 때는 어떤 목적으로 하는지 잘 들여다 보아야 할 것이다.
 
칭찬도 야단도 없다면 어떻게 아이들을 지도해야 하는가?
 
아이들이 나(어른)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평등하게 대하는 것이다.
 
아직 배워야할 것이 많은 아이들이지만 나의 도움을 받아 성장하고 있는 친구로 여기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아직 어리더라도, 곧 내 또래의 어른이 될 것이기에 그런 어른들의 과거와 마주한다, 라는 생각을 하려고 노력한다. 
 
선생님이, 부모가 아이와의 팽팽한 기싸움에서 지치고 화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수직관계를 버리고 수평관계를 택하면 오히려 신뢰와 존중을 받고, 함께 성장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진심으로 존경하는 어른은 그런 사람이다.
자신을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사람.
 
 
 

 
 
 
 
 
 
 나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Alfred Adler (1870 ~ 1937) 오스트리아, 정신의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