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아직 긴 인생이 남았습니다> #08자기만 아는 엘리트는 세상에 해로울 뿐/기시미 이치로
자기만 아는 엘리트는 세상에 해로울 뿐
매년 도쿄대학교와 교토대학교에 많은 합격자를 배출하는 중고일관교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학생들은 학교에 입학함과 동시에 도쿄대학교를 갈지 교토대학교를 갈지가 주요화제라고 했다. 정작 뭘 공부하느냐는 고민하지 않았다. ‘결국 학교 간판만이 중요한 건가’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의사를 꿈꾸는 학생이라면 왜 공부해야 하는지 자명하다. 하지만 뭘 위해 의사가 되려는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의학부에 들어가 졸업한 후 국가 고시에 합격만 하면 의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 외에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오로지 입시 공부만 하는 것이다. 한 수험생 부모에게 대체 뭘 위해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공부는 아이의 과제이니 부모가 함부로 간섭해선 안 된다고도 말했다. 그러자 대학 입시 전까지 아이 마음이 흔들리면 안 되는데 쓸데없는 말을 들어 난처하다는 반응이 돌아와 무척 놀랐다.
이런 사람에게 공부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지 모른다. 의학 공부는 입시 공부보다 훨씬 중요하고 어렵다. 훌륭한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국가고시만 잘 보면 되는 게 아니라 전공 분야를 깊이 있게 연구해야 한다. 시험에 붙고 나서 훨씬 더 많이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이때 자신의 일이 어떤 의미에서 세상에 공헌하는지 생각할 수 있어야 의지와 열정을 갖고 공부할 수 있다.
회사원도 마찬가지다. 공헌한다는 느낌이 없다면 계속 일할 수 없다. 공헌감은 양으로 헤아릴 수도 없고 남들이 알 수도 없다. 어릴 때부터 공헌할 기회가 있었던 사람이라면 공헌감이 뭔지 설명하지 않아도 안다. 반대로 한번도 공헌해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이를 설명하기란 매섭게 추운 겨울날 한여름의 무더위를 실감시키는 것만큼 어렵다.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 중에는 집에서 손 하나 까딱 않는 아이도 적지 않다. 부모는 아이에게 ‘넌 공부만 하면 돼. 그게 효도하는 거야’하며 집안일 면제 특권을 주고 시험 날짜가 다가올수록 텔레비전 음량을 줄이고 말소리를 낮춘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공부하는 것으로 특권을 누린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되면 사회에 나가서도 자기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전철에서 내리는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문이 열리자마자 냅다 올라타려던 초등학생을 본 적이 있다. 아이는 학원에 가는 길이라 얼른 자리를 잡고 앉아 숙제를 하지 않으면 안 됐을 것이다. 나는 그 아이가 바로 열차 안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진로를 방해했다.
자기밖에 모르고 남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재능이 있다면 그 재능을 다른 사람을 위해 쓰기 바란다. 자신에게만 관심 있는 엘리트는 세상에 해로운 존재일 뿐이다.
「아직 긴 인생이 남았습니다 」 기시미 이치로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꽤 만족하고 있어. 내게 주어진 재능이랄까, 신께서 주신 재능을 종합선물세트처럼 모아서 일하고 있거든. 또한 나의 성품과 가치관과도 잘 맞아. 나는 어린아이들의 육체적·정서적 발달을 돕고 돌보는 이 일에서 보람을 느껴.
나를 통해 아이들은 돌봄과 보호를 받고, 작은 세계안에서 사회생활을 배우지. 태어난지 만 2년, 3년 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이 어른의 축소판같은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때는 얼마나 놀라운지!
나는 분명 이 일에서 공헌감을 느끼고 있어. 아이들에게, 학부모들에게, 그리고 동료선생님들에게, 더 나아가서 사회에 공헌하고 있다고 생각해.
공헌감은 그다지 없고 생계를 위해 일하면서 삶의 기쁨과 만족이 없었던 때를 잊을 수가 없어. 여러 시도끝에 이 일을 찾았고 정말 감사하게도 나와 잘 맞는 일이었어. 돈을 버는 일을 하면서 동시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공헌감은 측정 불가능한 영역이지만, 이것이 주관적인 감정이라는 것에 주목하면 좋아.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그 느낌말이야. 그래서 뿌듯하고, 마음이 즐거운 상태.
우리에게 주어진 재능이 있다면 그 재능을 다른 사람을 위해 쓰기 바래. 그것이 다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윤택하게 한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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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미 이치로 (きしみいちろう 1956 ~ 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