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되어 줄 시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

His 제이 2024. 1. 6. 09:16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김춘수 1969.
 

「우리 시 깊이 읽기」 중에서

 

《I and the Village,1911》 Marc Chagall

 


 
 
 
이 시는 샤갈의 ‘나와 마을’이라는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쓴 시라고 해요.
 
샤갈은 자신의 고향인 비테프스크라는 마을을 늘 그리워했다죠.
시적화자도 고향이 그리워 이 시를 썼을까요.
 
샤갈에게 눈은 혹독한 시련이 아니라
봄이면 으레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인 듯해요.
 
그리고 그 삼월의 밤은, 잊지 못할 그 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이 지펴진 밤.
집집마다 다정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밤이겠죠.
 
누구나 마음 속에 그리움의 대상이 있어요.
자신과 분리되지 못하고 회귀를 갈망하는 대상이.
 
그런 대상을 간직하고 있는 분께 감히 말하고 싶어요.
당신은 슬프지만 행복한 사람이라고.
나 역시 그렇다고.
 

 
- J -

 
 
 
 
 
 
김춘수(金春洙 1922~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