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되어 줄 시

시詩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이바라기 노리코

His제이 2024. 2. 5. 07:52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거리마다 와르르 무너져 내려
엉뚱한 곳에서
푸른 하늘 같은 것이 보이기도 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곁에 있던 이들이 숱하게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 모를 섬에서
나는 멋 부릴 기회를 잃어버렸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아무도 다정한 선물을 주지 않았다
남자들은 거수경례밖에 할 줄 몰랐고
순진한 눈빛만을 남긴 채 모두 떠나갔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의 머리는 텅 비고
나의 마음은 꽉 막혀
손발만이 짙은 갈색으로 빛났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의 나라는 전쟁에서 졌다
그런 멍청한 짓이 또 있을까
블라우스 소매를 걷어붙이고 비굴한 거리를 마구 걸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디오에서 재즈가 흘러나왔다
금연 약속을 어겼을 때처럼 비틀거리며
나는 이국의 달콤한 음악을 탐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몹시도 불행한 사람
나는 몹시도 모자란 사람
나는 무척이나 쓸쓸하였다
 
그래서 다짐했다   되도록 오래오래 살자고
나이 들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프랑스 푸오 할아버지처럼
                               그렇게
 

이바라기 노리코,  「처음 가는 마을」에서

 

《Girl on a bicycle,1900》 Paul Gustave Fischer


 
 
 
 

이라바기 노리코의 시중에서도 유명한 시.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이 시를 읽는 독자마다
가장 예뻤을 때를 떠올렸을 것이다.
 
시인은 가장 예뻤을 때
몹시도 불행한 사람이었고,
몹시도 모자란 사람이었으며,
몹시도 쓸쓸하였다고 한다.
 
그것을 만회하고 싶은 마음에서인지
그녀는 되도록 오래 살기를 다짐하는데.
 
다짐한다고 오래 사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남은 생을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살 것인지는
나의 몫이니, 충분히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다.
 
나도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떠올려 본다.
 
그때 나는
몹시도 행복한 사람이었고,
몹시도 만족한 사람이었으며,
많은 좋은 사람이 곁에 있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행복했다.
 
나는 안다.
그 시절이 언젠가 또다시 오리라는 것을.
 
나의 삶이 충분했기에
나는 오래 살지 않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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