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보내는 편지

그렇다면 내가 이제 해야 할 일은

His 제이 2024. 10. 19. 20:43

 
토요일 저녁.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오늘은 한 발짝도 밖을 나가지 않았다.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고 보람도 없이 하루가 지났으나 이렇게 가벼운 날들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늘 ‘나니아 연대기’를 오래 읽었다. 내일이면 다 읽을 것 같다. 막바지에 다다르니 벌써부터 아쉬운 마음. 나니아 연대기를 읽는 동안 내가 영원히 살 나라에 대하여 매일 상기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어렴풋하고 실체가 없는 그곳은, 내 나라는, 그분의 통치는 분명 실재하고 나는 지금도 그 나라의 시민으로서 여기에 살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두 나라의 국적이 아닌 한 나라의 국적을 가지고 평생 살아갈 것이다. 
 
나니아 연대기를 읽으면서 이런 소망을 갖게 되었다.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해 주세요.) 그 영광스러운 죽음이란 말만 하더라도 얼마나 멋진지. 그것은 오로지 나를 위한 죽음이 아니다. 실수로 일어나는 일이 절대 아니다. 비참함은 없는, 말 그대로 영광스러운 죽음인 것이다. 영광스러운 주님이 딸을 영광스럽게 완성하시는 죽음.
 
사람이 바랄 수 있는 소원 중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이러한 소원은 정말 값진 것이 아닐까. 축복중의 축복이 아닐까. 내 소망이 이루어진다면 과연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할까. 나니아 연대기에서 피터, 에드먼드, 루시, 유스터스, 질은 자신들도 모르는 새에 나니아로 완전히 입국되었다. 그들은 열차사고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나 또한 죽음을 맞이한다면 같은 입장이 되겠지.
 
그렇다면 죽음은 정말 나에게 아무런 겁을 주지 못한다. 게다가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고 죽는다면 길이길이 기억될 별과 같은 죽음이 될 것 같다.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할까.
 
그렇다면 내가 이제 해야 할 일은, 언젠가 죽는 것은 예정되어 있으므로 지금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다. 그저께부터 잠들기 전에 ‘야고보서’를 읽고 있다. 행함이 없는 믿음에 대하여 내 양심이 질책을 받고,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 동반되어야 함을 주께로부터 직접 듣는 기분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이의 명령을 나는 받아들이고 있다. 즉 나는 그것이 주님의 명령임을 믿는다. 그렇다면 행함이 있어야 하는데 행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마음만 지켜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이 명령이라면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도 모른다. 그때마다 '어떻게 할까요?' 물어보는 수밖에. 그리고 내 안에 확신이 드는 대로 행하는 수밖에.
 
그러니 내 나라에 가서 나의 주인 앞에 수치스러워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떨고만 있지 않도록, 루시처럼 단번에 달려가 그 품에 안기고 '보고 싶었어요'라고 말할 수 있도록 내가 속한 시대에서  순종하며 살자. (그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