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되어 줄 시
시詩 < 지는 꽃을 위하여 > 문정희
His 제이
2024. 11. 20. 21:11
지는 꽃을 위하여
잘 가거라, 이 가을날
우리에게 더 이상 잃어버릴 게 무어람
아무것도 있고 아무것도 없다
가진 것 다 버리고 집 떠나
고승이 되었다가
고승마저 버린 사람도 있느니
가을 꽃 소슬히 땅에 떨어지는
쓸쓸한 사랑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른 봄 파릇한 새 옷
하루하루 황금 옷으로 만들었다가
그조차도 훌훌 벗어버리고
초목들도 해탈을 하는
이 숭고한 가을날
잘 가거라, 나 떠나고
빈 들에 선 너는
그대로 한 그루 고승이구나
*고승 : 출가한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
문정희 「오라, 거짓사랑아」 에서
잃었다 한들 본래 없던 것,
얻었다 한들 본래 있던 것.
- J -
시인 문정희 ( 文貞姬 194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