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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 아주 슬픈 모리츠 씨 > 주민현

His제이 2025. 1. 15. 22:56

 

아주 슬픈 모리츠 씨

 
 
아주 슬픈 모리츠씨는
일생에 두 번 넘어졌다
 
대입 시험에서 한번
고객사 미팅에서 아주 큰 재채기를 해서 또 한번
 
아주 슬픈 모리츠 씨
 
양말 없이 구두를 신은
해가 뜬 날 우산을 든
그런 슬픈 모리츠 씨
 
삶과 죽음은 가고 오는 것
 
모리츠 씨의 할아버지가 가고
조카가 가고
 
무지개의 빛이 문득
빛나는 머리칼 같다
 
개를 데려온 사람은 해변의 개를 찍고
아이가 있는 사람은 해변에서 노는 아이를 찍고
 
혼자 온 모리츠 씨는
해변에서 가만히 발자국을 찍는다
 
그런 모리츠 씨와 나는
메리 에번스*와 함께
저물어가는 해를 본다
 
시간을 물쓰듯 하던 시절이 있었다**
 
꿈속에서는 웃었던 기억이 없다
멈추어 있는 게 좋았다
 
조금 투박하게
겨울이 오고 있어, 말하면
시작되는 음악
 
눈이 오는 소리로 시작되는 언어
 
오랜 겨울이 오는 냄새
시작되는 냄새
 
양말 비누 따위를 사기에 좋은 계절
영원은 꿈속인가?
 
같은 색 옷을 입고
모리츠 씨와 나는
장례식과 결혼식에 간다
 
세월은
가볍게 등 밀어주는 꿈의 세신사
 
 

*조지 엘리엇의 본명
** “우리 삶의 저녁은, 사랑이여/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지요.” (조지 엘리엇 「달콤한 결말이 왔다 가네요, 사랑이여」)

 
 

주민현, 「멀리 가는 느낌이 좋아」에서
Gary Bunt 作

 
 
 
 
이 시대에 '아주 슬픈 모리츠 씨'는 얼마나 많을까.

나 또한 예외는 아니지.
나는 일생에 몇 번을 넘어졌던가..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셀 수 없군.
그런데 나는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왔지?
분명 회피하거나 덮어두고 오지 않았어.
내게 주어졌던 과제는 대부분 해결되었어.
그때마다 일어설 힘은 어디서 온거지?
아.. 그렇지, 잊고 있었네.
나 스스로 툭툭 털고 일어난 것이 아닌
내 손을 잡아 일으켜 준 누군가가 있었다는 걸.
앞으로 또 얼마나 넘어져야 할까 우울했던 적이 있어.
그런데 그런 걱정이 의미가 있나 싶어.
지나온 세월이 증명해 주는 걸.
 
시간을 아껴쓴다고 아껴지지 않는 날이 도래했어.
그러니 물쓰듯 살 수는 더더욱 없는 거야.
미래를 걱정하고 염려하며 시간을 보내기에는
그 세월이 대단히 아깝다는 것을 기억하자.
인생의 불확실성을 두려워 말고 수용하자.
본디 인생은 그러한 것이니까.
 
 
 
 
 
 
 

- 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