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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봄, 봄날은 아침
수필 <오월의 구상> 노천명 본문
오월의 구상
여학교 때 자수를 가르치는 선생님 말이, 수를 놓다가 가끔 눈을 들어 파란 잔디밭이나 푸른 나무들을 바라보면 그 푸른빛이 눈의 피로를 덜어 준다는 것이었다.
그런 뒤부터 나는 이것을 명심하고 고개를 박고 정신없이 수를 놓다가도 생각이나 나는 듯이 이따금 숙였던 머리를 불쑥 들고는 푸른 데에다 시선을 주려고 더듬는다. 정 푸른빛을 찾지 못할 때에는 남빛 하늘가라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눈을 거두는 것이다.
이 습관은 학교를 나온 지 수십 년이 된 오늘까지도 계속되어서 책을 보다가, 또는 글을 쓰다가 가끔 눈을 들어 남빛 하늘가를 내다보거나 하늘이 안 보이는 경우에는 다른 것에라도 잠시 시선을 주었다가 눈을 조절한 뒤 거두는 버릇을 갖게 하였다.
그런 관계인지 나는 아직 안경을 안 쓰고 배긴다.
푸른빛이 보안상保眼上에 좋아 눈의 피로를 덜어 준다지만, 눈의 피로뿐만이 아니라 내가 생각건대 이것이 우리의 마음의 피로를 덜어 주는 편이 또한 적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속이 상하면 푸른 나무 꼭대기를 바라본다.
어떤 사람의 얼굴을 바라본다든가, 거리를 내다보는 것보다 훨씬 마음이 쉽게 달래지는 때문이다.
이것이 거닐 수 있는 녹음 사이라든가, 푸른 숲이면 그 효과는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푸른 나무들을 보는 동안 우리의 마음은 확실히 윤택해지고 선남선녀善男善女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거리마다 로터리에 숲을 이루어 놓는다면 길을 가는 시민들의 마음은 한결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한다.
고목 같은 나무에서 연연하게 움이 트고 여기서 나온 새싹이 파아랗게 신록을 이룰 무렵이면 사람들의 가슴은 도시에서나 농촌에서나 말할 수 없이 부풀어 오른다.
일찍이 아름다운 5월들이 있었거니와 5월은 영원히 사람들과 더불어 즐거운 달이 될 게다.
내게 이 신록의 계절이 좋아진 것은 예닐곱 살 때였던 성싶다. 봄철이면 온천을 다니는 어머니를 따라 송화松禾라는 데로 원정을 가는데 달구지에서 내려 정원으로 들어가는 길 좌우에 내 키와 거의 맞먹는 작은 나무들이 주욱 늘어서 있어 가지고 그 나무엔 애순들이 유난히 예쁘게 돋아나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그것이 어떻게나 고왔던지 어머니에게 그 나무의 이름을 물었더니, 서울 사람인 우리 어머니는 이 나무 이름을 몰랐고, 같이 원정을 가던 아주머니가 그게 <수무나무>라는 것이라고 일러 주었는데, 내가 꽃보다 신록을 더 좋아하게 된 것은 필시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한다.
나는 꽃이 피면 어서 빨리 지라는 사람이다.
도무지 그 어지럽고 나를 생포하는 것 같은 요기妖氣를 내가 감당해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대신 푸른 잎들을 보면 내 눈은 씻은 듯이 밝아지고 파아란 잎들을 가만히 보고 있을 양이면 내 가슴은 갓 스물처럼 뛰는 때가 있다.
내 마음이 즐거워지는 때가 되어 그런가, 일 년 중에 내 얼굴이 그중 좋아지는 때도 또한 5월인 성싶다.
그런데 이렇게 나무들을 좋아하면서도 내 집에 신록을 볼 나무 한 그루는커녕 난초 한 포기를 못 심고 산다.
볕이 안 들어주는 한 평 뜰을 가지고는 재주를 피울 도리도 없다.
그래서 일전에도 뉘 집을 찾다 보니 그 동리에는 많은 아담한 이층 양관洋館 이 있어 이것들을 지나며 내 눈은 이런 집들을 얼른얼른 지나치지 못하고 자꾸만 늘어 붙었다.
나에게도 요 또래의 조그만 양관이 하나 꼭 필요했다.
볕이 잘 드는 이층, 그리고 창을 열어젖히면 푸른빛이 눈에 들어올 수 있는 정도의 정원... 그래서 내가 구상을 하며 거닐 수 있는 이런 집을 하나 꼭 갖고 싶다.
창을 열어젖히면 푸른빛이 눈에 들어올 수 있는 뜰, 이것은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틀림없는 하나의 향연이다.
복잡한 현실에서 우리는 가끔 눈을 들어 다른 데를 보며 쉴 필요가 있다.
같이 앉아 있는 방안의 사람이 보기 싫을 때는 시선을 창밖으로 돌려야 하겠고, 이런 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장독이라든가 궁기가 낀 살림 부스러기가 아니고 모름지기 한그루의 싸리나무라도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푸른 5월이 밀물처럼 들어온다.
집집의 뜰에, 거리의 로터리에, 이 신록 물이 들게 하라! 그리하여 이 푸른빛을 보는 시민들의 충혈된 눈을 수정처럼 맑게 해 주라.
노천명 1954. 5

복잡한 현실에서
우리는 가끔 눈을 들어
다른 데를 보며 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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