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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봄, 봄날은 아침🌿
일기日記_4 본문
오늘 나는 가톨릭 공회엘 나가 영세를 받았다.
아침에 목욕을 하고 새로 만든 흰 옷을 갈아입고 형님을 따라 성당으로 향하는 길은 내게 있어 진실로 처음 갖는 엄숙한 길이었습니다. 수녀님은 내게 화관을 씌워 주시고 신부를 만지듯이 만져주신 후 본당 신부님에게로 인도를 하셨습니다.
영세를 주신 후 신부님은 장시간에 걸친 강론을 하셨습니다.
천주를 떠나 내 마음대로 헤맨 내 지나온 생에 대한 참회의 눈물이 내 가슴 골짜기에서 하염없이 흘러 내렸습니다. 늘 돌아가야 할 고향처럼 향수에 차 있던 가톨릭으로 이제 나는 돌아왔습니다.
3년 전 조카딸 용자가 임종을 하던 날 아침 바로 그 머리맡에서 나는,
“나도 입교를 하겠다. 그래서 나도 천당엘 가 너를 만나겠다”고 했더니 용자는 갑자기 희색이 만면해지며, “오늘같이 제가 기쁜 날은 없다”고 하며 그날 정오에 운명을 하였습니다.
신부님은 나에게 베로니카라는 본명을 주셨습니다. 베로니카는 예수께서 악당들에게 맞아서 피를 흘리고 넘어져 계실 때 군종 가운데에서 용감히 뛰어나와 제 손수건으로 그 얼굴의 피와 침을 닦아준 성녀의 이름이라고 하시며 이 이름을 내게 주셨습니다. 이제는 당신도 나를 베로니카라고 불러주십시오. 내가 가졌던 이름 석 자가 정말로 이제는 싫어졌습니다.(중략)
1956년 4월 24일
노천명 수필 전집 <이기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1956년 5월 27일
(이하 생략)
1957년 3월 7일
1957년 3월 12일
(편집자 주 – 노천명의 일기는 여기서 끝이 난다. 병세 악화로 더는 일기를 쓰지 못한 것으로 추정한다. 시인은 3개월 뒤인 1957년 6월 16일 세상을 떠났다.)

성경에서 베로니카라는 여인의 이름을 읽어 본 적이 있던가. 내 기억에는 없다. 외전도 있다고 하니 그러한 여인이 실제로 있었을 수도. 나는 그 용감함을 닮고 싶다. 그 용기는 믿음과 사랑을 전제로 한 것이었을 것이다.
말년에 자신의 이름 석자를 한스럽게 여기던 여인의 삶은 이렇게 끝이 난다. 친일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좋은 면모도 다 헤아림 받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울 따름. 작가라면 공인인데 순간의 선택마다 정말 신중해야 했다. 그녀가 좀 더 신중했다면 후회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나의 삶의 끝에서 크고 작은 후회는 필연적으로 있겠지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일만은 없기를 바랄 뿐이다.
- 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