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봄, 봄날은 아침🌿

일기日記_4 본문

카테고리 없음

일기日記_4

His 제이 2024. 7. 27. 21:15

 
오늘 나는 가톨릭 공회엘 나가 영세를 받았다.
 
아침에 목욕을 하고 새로 만든 흰 옷을 갈아입고 형님을 따라 성당으로 향하는 길은 내게 있어 진실로 처음 갖는 엄숙한 길이었습니다. 수녀님은 내게 화관을 씌워 주시고 신부를 만지듯이 만져주신 후 본당 신부님에게로 인도를 하셨습니다.
 
영세를 주신 후 신부님은 장시간에 걸친 강론을 하셨습니다.
 
천주를 떠나 내 마음대로 헤맨 내 지나온 생에 대한 참회의 눈물이 내 가슴 골짜기에서 하염없이 흘러 내렸습니다. 늘 돌아가야 할 고향처럼 향수에 차 있던 가톨릭으로 이제 나는 돌아왔습니다.
 
3년 전 조카딸 용자가 임종을 하던 날 아침 바로 그 머리맡에서 나는,
 
“나도 입교를 하겠다. 그래서 나도 천당엘 가 너를 만나겠다”고 했더니 용자는 갑자기 희색이 만면해지며, “오늘같이 제가 기쁜 날은 없다”고 하며 그날 정오에 운명을 하였습니다.
 
신부님은 나에게 베로니카라는 본명을 주셨습니다. 베로니카는 예수께서 악당들에게 맞아서 피를 흘리고 넘어져 계실 때 군종 가운데에서 용감히 뛰어나와 제 손수건으로 그 얼굴의 피와 침을 닦아준 성녀의 이름이라고 하시며 이 이름을 내게 주셨습니다. 이제는 당신도 나를 베로니카라고 불러주십시오. 내가 가졌던 이름 석 자가 정말로 이제는 싫어졌습니다.(중략)
 
1956년 4월 24일

노천명 수필 전집 <이기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1956년 5월 27일
(이하 생략)
 
 
 
1957년 3월 7일
 
 
 
1957년 3월 12일
 
(편집자 주 – 노천명의 일기는 여기서 끝이 난다. 병세 악화로 더는 일기를 쓰지 못한 것으로 추정한다. 시인은 3개월 뒤인 1957년 6월 16일 세상을 떠났다.)

《Chapelle de Buis, 1921》 Maurice Utrillo

 
성경에서 베로니카라는 여인의 이름을 읽어 본 적이 있던가. 내 기억에는 없다. 외전도 있다고 하니 그러한 여인이 실제로 있었을 수도. 나는 그 용감함을 닮고 싶다. 그 용기는 믿음과 사랑을 전제로 한 것이었을 것이다.
 
말년에 자신의 이름 석자를 한스럽게 여기던 여인의 삶은 이렇게 끝이 난다. 친일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좋은 면모도 다 헤아림 받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울 따름. 작가라면 공인인데 순간의 선택마다 정말 신중해야 했다. 그녀가 좀 더 신중했다면 후회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나의 삶의 끝에서 크고 작은 후회는 필연적으로 있겠지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일만은 없기를 바랄 뿐이다.
 

- 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