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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봄, 봄날은 아침🌿
내가 짝사랑을 하는 동안에 본문
내가 짝사랑을 하는 동안에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스쳐 지나간 것이 고맙고 내가 당신의 존재를 알게 된 것만으로 고마운 마음이다. 당신 것 중에 내가 가지고 있는 건 일기장에 하루걸러 하루 적힌 이름뿐일지라도 나는 당신에게서 사랑도 배우고 체념도 배우고 미련도 배운다. 나를 바라봐 주길 바라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피하게 되는 동공은 왜 통제가 되지 않는지, 멈춘 줄 알았던 심장은 어떤 원리로 다시 그렇게 빨리 뛰게 되는지, 내가 원래 알고 있던 외로움과 당신에게서 배운 외로움이 어떻게 다른지 아무도 가르쳐준 적 없지만 나는 혼자서 다 알 수 있다. 자꾸 생각하고 오래 생각하면 다 그렇게 알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알게 된 모든 것들은 다음 날 당신을 마주치는 순간 다 잊게 된다. 그럼 나는 그날 밤 다시 처음부터 배워가는 것이다. 그런 반복으로 그때 배운 것들은 오래 기억하게 된다.
사랑 중 제일은 짝사랑이 아닐까 한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 중에 제일이 사랑이라면 사랑 중 제일은 단연 짝사랑이라고 믿는다. 손을 잡지 않고,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없고, 소유하지 않아도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짝사랑을 해본 사람을 사랑한다. 어쩌면 짝사랑이야 말로 사랑의 본질과 가장 가까이 있다고 생각한 날들이 있었다. 어떤 짝사랑은 결과보다 과정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술을 퍼부어야만 솔직해지는 나는 소주 한 잔에도 간지러운 취기를 느끼는 것이 부러울 때가 많았는데 그런 종류의 짝사랑은 일기장에 이름을 적어두고 바라만 봐도 행복해지니 어떻게 부럽지 않을 수가.
사랑의 완성이 무엇일까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지만 사실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래도 짝사랑의 완성은 고백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사랑의 완성이 결혼이라면 너무 상투적이고 백년해로라면 너무 싱겁다. 짝사랑이 완성되는 순간이란 마음을 전달하는 때가 아니라 내 안에서 하얗게 소실될 때가 아닐까 한다. 대가를 바라고 호의를 베푸는 것을 함부로 사랑이라고 하지 않듯이 대답을 바라지 않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짝사랑의 완성이라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마음은 주는 법을 알아야 받을 수 있다.
혼자 하는 사랑의 좋은 점은 혼자 먹는 밥의 좋은 점과 닮아있다. 음식에 들어간 재료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 씹고 삼키는 과정에서 내 몸속 어디가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지 느끼게 해준다. 짝사랑도 사랑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잠이 오지 않는 늦은 밤 침대에 누워 천장 벽지 무늬에 배어드는 너의 얼굴이 점점 또렷해질 때, 너의 행복을 소원으로 말하고 싶어서 소원을 빌 수 있는 보름달이 빨리 뜨길 바랄 때, 너와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 더 잘 살기로 다짐할 때 우리는 마주 보는 것보다 더 그사람을 깊이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은 난시 같아서 너무 가까우면 두 개로 번져 보이고 너무 멀어도 흐릿하게 잘 안 보인다. 연인들이 서로를 자세히 보고 보이고 싶은 마음에 너무 가까이 있으면 싸우고, 너무 멀리 벌어지면 그대로 멀어진다. 사랑에는 거리 조절이 중요하다. 혼자하는 사랑은 가장 잘 보이는 거리에 너를 두고 마음의 초점을 맞추면 된다. 좋아하는 식물처럼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오래오래 기뻐하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나는 너를 더 잘 사랑하게 된다.
널 사랑하는 마음 이전에 존중하는 마음으로 널 대한다. 짝사랑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을 먹고 자란다. 꽃을 꺾는 사람을 두고 꽃을 사랑한다고 하지 않는다. 원래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은 꽃다발도 잘 사지 못한다. 열렬히 사랑하다 잘 삼킨 짝사랑도 뜨거운 연애만큼 오래 기억된다. 혼자 하는 사랑을 해봐야, 잘 해봐야 서로 하는 사랑도 잘 할 수 있다. 그때는 몰랐는데 이젠 안다. 그래서 일기장에 적힌 그 이름들이 고맙다.
문상훈,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에서

오랜 시간, 하루 걸러 하루 내 일기장에 적혀 있던 그 이름.
조용히 불러보고 불러보면 그립기만한 그 이름.
손을 잡지 않고,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없고, 소유하지 않아도 여전히 내 안에서 살아 숨쉬는 그 이름.
온 마음 다해 존중하고 기억하고 싶은 그 이름.
- 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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