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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바람 속을 걷는 법1,2,3,4,5 > 이정하 본문

위로가 되어 줄 시

시 < 바람 속을 걷는 법1,2,3,4,5 > 이정하

His 제이 2023. 6. 20. 07:03

 

바람 속을 걷는 법1 

 
바람이 불었다.
 
나는 비틀거렸고,
함께 걸어주는 이가
그리웠다.
 
 
 
 

바람 속을 걷는 법2

 
바람 불지 않으면 세상살이가 아니다.
그래, 산다는 것은
바람이 잠자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바람이 약해지는 것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바람 속을 헤쳐나가는 것이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것,
바람이 드셀수록 왜 연이 높이 나는지.
 
 
 
 
 

바람 속을 걷는 법 3

 
이른 아침, 냇가에 나가
흔들리는 풀꽃들을 보라
왜 흔들리는지, 하고많은 꽃들 중에
하필이면 왜 풀꽃으로 피어났는지
누구도 묻지 않고
다들 제자리에 서있다
 
이름조차 없지만 꽃 필 땐
흐드러지게 핀다. 눈길 한 번 안주기에
내 멋대로, 내가 바로 세상의 중심
당당하게 핀다
 
 
- 이정하, 「 편지 」 중에서
 
 
 
 
 

바람 속을 걷는 법 4

 
그대여, 그립다는 말을 아십니까
그 눈물겨운 흔들림을 아십니까
 
오늘도 어김없이 집 밖을 나섰습니다.
마땅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걷기라도 해야지 어쩌겠습니까
함께 걸었던 길을 혼자서 걷는 것은
세상 무엇보다 싫었던 일이지만
그렇게라도 해야지 어쩌겠습니까
잊었다 생각했다가도 밤이면 속절없이 돋아나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천 근의 무게로 압박해오는 그대여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당신을
가두고 풀어주는 내 마음감옥을 아시는지요
잠시 스쳐 간 그대로 인해
나는 얼마나 더 흔들려야 하는지
추억이라 이름 붙인 것들은
그것이 다시는 올 수 없는 까닭이겠지만
밤길을 걸으며 나는 일부러
그것들을 차례차례 재현해봅니다.
그렇듯 삶이란 것은
내가 그리워한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하나 맞이했다가 떠나보내는 세월 같은 것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만 남아
떠난 사람의 마지막 눈빛을 언제까지나 떠올리다
쓸쓸히 돌아서는 발자국 같은 것
 
그대여, 그립다는 말을 아십니까
그 눈물겨운 흔들림을 아십니까
 
 
 
 
 

바람속을 걷는 법5

 
어디 내 생에 바람이 불지 않은 적 있었더냐
날마다 크고 작은 바람이 불어왔고
그때마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바람이 잠잠해지길 기다리곤 했다
 
기다리는 그 순간 때문에
내 삶은 더뎌졌고
그 더딤을 만회하기 위해
나는 늘 허덕거렸다
 
이제야 알겠다, 바람이 분다고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기다리는 이에게 바람은 더 드세게
몰아닥칠 뿐이라는 것을
 
바람이 분다는 것은
헤쳐나가라는 뜻이다
 
살다 보니 바람이 아닌 게 없더라
내 걸어온 모든 길이 바람길이더라

 
- 이정하, 「 다시 사랑이 온다 」 중에서

 
 
 


 

저마다의 바람 속을 지날 때
순순히 모든 것을 맡기고, 
또한 꿋꿋이 헤쳐나가기를..

우리를 한뼘 더 자라게 할 
인고의 시간에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