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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日記_2

His 제이 2024. 7. 25. 21:42

 
아침 열 시 미사엘 갔다 왔다.

신부님 강론에서 "진실로 믿는 신자라면 죽음은 공포로 맞을 것이 아니고 한없는 즐거움을 가지고 맞아야 할 것이다"라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우리는 죽음이란 생각을 헤치고 영원한 세상으로 기쁘게 뛰어드는 것이라고.

이 점이 내가 늘 의심하던 점이다. 어째서 신부나 수녀들이라면 마땅히 기쁘게 맞아야 할 이 죽음을 그들까지도 교인이 죽었을 때 왜 슬퍼하지 않지 못하는가에 대해서....

D에게 가자던 것이 아침 계획이었으나 내 자존심은 또 인색했다. 그래서 상추를 사려던 일, 꽃집에 가서 바이올렛 화분을 사려던 일은 보기 좋게 중단이 되고 말았다.

자존심! 나는 죽을 때까지 이것으로 해서 내 애정을 한 번도 화려하게 펴보지는 못할 것 같다. 숱 한 경우에 자존심이 나와서 번번이 마귀할멈처럼 해살을 놀았던 것이다.

종일 《피카소와 그의 친구들》을 읽었다.

누가 오든 없다고 하라고 일렀는데도 불구하고 순해빠진 이 늙은이는 또 사람을 들여놨다. 소학교 시절의 친구다. 전라도로 시집을 갔다고 한다. 무척 반가워야 할 친구인데 20여 년 동안의 격조는 무언지 모르게 그 친구와 내 사이를 거북하게 막아주는 것이 있었다. 아들이 이번에 대학 시험을 치르러 왔는데 청을 좀 넣어달라는 것이 온 목적이었다.

그가 간 뒤엔 또 복덕방 사람이 왔다. 늙은이는 여전히 나를 불러댔다. 나중에 나는 늙은이를 단단히 나무랐다.
 
“아, 부득부득 들어오는 걸 나가라고 해요? 어떻게 해요?” 하고 유한 배짱의 대답을 한다. 구렁이가 다 된 그 눈, 느려빠진 그 동작... 저 할머니 때문에 내가 정말 얼마나 죄질 기회를 많이 갖는지 모른다. 신부님 앞에 나가 성사를 볼 때마다 ‘남을 미워했습니다’고 고죄를 한 가운데 그 몇 할은 저 할머니 때문이었다.

 
부리는 사람을 잘 만난다는 것은 하나의 큰 복이다. 이 복은 아무나 못 타는 것 같다. 남편 복이 있는 사람이 이런 복도 한꺼번에 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디서 조용하고 총명한 내 비위에 맞는 계집애를 하나 얻었으면 좋겠다.
 
1956년 3월 28일

노천명 수필 전집 <이기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mary maxam 作

 


 
나도 늘 의문이면서 답을 얻지 못한 것 중 하나.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 그래서 죽음이 두려움이 아니라 평안과 기쁨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죽음 앞에서 왜 안타까움을 느끼고 왜 슬픔을 느끼는지..예수께서는 나사로가 잠들었을 때(죽었을 때) 왜 눈물 흘리셨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는 사람들의 심정을 그분도 동일하게 느끼셨던 것일까.. 나중에 뵈면 꼭 여쭤보고 싶다.
 

- 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