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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장마> 천상병

His 제이 2024. 8. 30. 21:55

 

장마

 

내 머리칼에 젖은 비

어깨에서 허리께로 줄달음치는 비

맥없이 늘어진 손바닥에도

억수로 비가 내리지 않느냐

비여

나를 사랑해 다오.

 

저녁이라 하긴 어둠 이슥한

심야深夜라 하긴 무슨 빛 감도는

이 한밤의 골목 어귀를

온몸에 비를 맞으며 내가 가지 않느냐

비여

나를 용서해 다오.

 

천상병

《Rainy Night in Washington, 1910》 Phillip Little


 

무슨 사연인지 모르나 애절하게 가슴에 와 닿는 말.

 

비여

나를 사랑해다오.

 

비여

나를 용서해다오.

 

누구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었을까.

 

사랑 받는 것과 용서 받는 것,

그것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은총.

그 은총을 우리에게 내려주시기를..

- J -

 

 

 

 

 

 

 

 

시인 천상병(千祥炳, 1930 ~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