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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가 되어 줄 시

시 <편지> 윤동주

His 제이 2023. 12. 5. 07:57

 

편지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습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 줌 옇고(넣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윤동주
1936. 12

 

《 Notre-Dame de Clignantcourt》 Maurice Utrillo

 

 
 
그가 애틋하게 부르는 누나.

어머니를 부를 때만큼 애틋하다.
 
단지 먼 곳에 있다면 그리 애틋할 것도 없는데
주소도 쓰지 않고 우표도 붙이지 않는 걸 보니
누나는 이 세상에 없는 존재인 듯하여서.
 
이 눈을 보고 누나를 생각한다.
누나에게 이 눈을 전해주고 싶어한다.
그리워한다.
 
그가 그리워하는 누나는 어떤 존재일까.
 
누나 가신 나라에 눈이 오지 않으니
그곳은 추위라고는 모르는 나라일텐데
어둠 하나 없는 빛으로 가득한 나라일까.
 
그는 어둠 속에 처해 있었으니
그렇다면 그 나라를 동경했을 것.
 
봉투에 담아 보내고 싶었던 눈 한줌은
시인 자신이 아니었을지.
 
지금은 누나 있는 나라에 가 있을 그를 떠올려본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없이 살기를 바랬고,
그렇게 살지 못할 땐 몹시 괴로워했고,
 
마음을 다하여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리라 다짐했던
그의 발자취를 밟아,
나 또한 그리 살겠다고 다짐해본다.

- J -

 
 
 
 
 
 
윤동주 (尹東柱 1917 ~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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