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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내 눈빛을 꺼주소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

His 제이 2024. 1. 8. 20:31

 

내 눈빛을 꺼주소서

 
내 눈빛을 꺼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아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내 팔을 부러뜨려주소서, 나는 손으로 하듯
내 가슴으로 당신을 끌어안을 것입니다.
내 심장을 막아주소서, 그러면 나의 뇌가 고동칠 것입니다.
내 뇌에 불을 지르면, 나는 당신을
피에 실어 나르겠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그대의 축제를 위하여」중에서

 

《An interior with a woman reading, 1885》Carl Larsson

 


 
 
릴케가 쓴 절실한 사랑의 고백입니다.

 
기도체로 쓴 이 시는, 22세의 청년 릴케가 14세 연상의 여인이며 중년 작가인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에게 바친 작품이예요. 그의 바램대로 이 시는 그녀의 마음을 얻었다고 하죠.
 
자신을 장님으로 만들고, 귀머거리로 만들고, 벙어리로 만들고, 사지가 없는 불구자로 만들어도,심장 박동 마저 멈추게 한다하여도 그녀를 향한 사랑은 변함이 없으며 오히려 더욱 강렬해질 뿐이라고 말하는 듯하군요.
 
이러다 타버릴 것만 같습니다. 위태로워 보일 만큼 무모해보이기도 해요. 사랑에 눈이 멀어 판단력이 흐려진 사람처럼.
 
이 시를 썼던 시인은 이후에 전혀 상반된 시를 써요. 사랑할수록 혼자가 되라는. 서로에게 고독을 보장해주는 것이 결국 서로를 사랑으로 이끈다는 것을 릴케는 깨달은 모양이예요.
 
불같은 사랑은 지속적으로 불태우기가 어렵죠.  불같은 열정이 사라진 후에는 의지를 다하여 그 사랑을 지속해야 해요. 사랑은 느낌이 아니라 의지에 가까우니까요.
 
사랑할 땐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결점이 비로소 보일 때 우리는 실망하죠. 그렇지만 그 결점 또한 그 사람의 일부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 사람의 장점 뿐 아니라 결점도 마땅히 끌어 안을 수 있다면 그것이 진실된 사랑이라고 믿어요.
 
 

- J -

 
 
 
 
 
 
Riner Maria Rilke (체코1875~1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