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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눈 오는 지도> 윤동주

His 제이 2024. 1. 13. 19:45

 

눈 오는 지도地圖

 
순이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나려, 슬픈 것처럼 창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위에 덮힌다. 방안을 돌아다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이나 천정이 하얗다. 방안에까지 눈이 나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이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밑, 너는 내 마음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쪼꼬만 발자욱을 눈이 자꾸 나려 덮여 따라 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욱을 찾아 나서면 일년 열두 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나리리라.
 
윤동주

열두 개의 달 시화집 十二月 「편편이 흩날리는 저 눈송이처럼」중에서
《 Snow-covered street of Louveciennes, 1874》 Alfred Sisley

 
 

묻고 싶다. 순이가 누구인지.
역사의 관점으로 해석할 수도 있으나 지나치지 않을까 한다. 그는 생물학적으로 남자였고, 마음에 연정을 품을 수 있으니 그러한 대상이 있었다면 인간으로서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런 그녀를 떠나보내고 그의 마음엔 사시사철 눈이 내린다. 아마 눈을 감는 날까지 잊히지 않았겠지. 말없이 보내야 했던 그 마음이 얼마나 아렸을까.

사실 질투가 일었다.
그는 워낙 대쪽 같은 선비 같아서 오직 대의만 생각할 뿐 사랑의 감정이라고는 느낄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그렇다면 내 착각인 것이다.

그의 사랑이 이루어졌다면 좋았을까.
결과적으로 그러하지 않음이 지금 이 세대를 사는 누군가에게 작은 위안이 되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 J -

 

 

 

윤동주 (尹東柱 1917 ~ 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