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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 길 > 윤동주

His제이 2025. 1. 18. 19:54

 
길 

 
잃어 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게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 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윤동주 1941,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서




 


 
 
 
 
오늘 오전 9시 50분, CGV에서 상영하는 '하얼빈'을 보고 왔다. 역사 시간에 배워서 익히 알고 있던 사건, 그러나 충격이었다.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남는 여운. 너무 숭고해서, 너무 고결해서,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내 영혼의 주인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셨고, 악을 선으로 갚으셨다. 그런 이를 나는 영화에서 보았다. 그런데 그에게 돌아온 건 배신과 위협과 무자비함.. 한낱 감성에 빠져 어리석게 판단한다 비난받았던 한 사람은, 악인을 용서하고 스스로 돌이킬 기회를 준 대가로  제 목숨과도 같은 동지를 잃었다.
 
「풀 한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자괴감 속에서 고통을 짊어지고 홀로 살아남은 그가 자결을 택하지 않고 살아야 했던 건, 이제 자신의 목숨은 제 것이 아닌 먼저 죽은 동지들의 것이라고 믿었기에. 그들을 대신해서 잃은 것을 찾아야 했기에. 
 
나는 그에게서 죄악을 사유하시고, 용서하시며,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시고, 다시 자비를 베푸시는 분을 보았다. 그는 인간답게 살다가 인간답게 죽었고, 영예롭게 죽었다. 나의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도로 찾아온 주권. 그로 인해 지금 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제법 안온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감사하다.. 감사하다.
 

 
 
 
 
 
 
 

- 제이

오늘 오후에 읽고 멈춘 미가서 7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