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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 호두의 것 > 주민현

His제이 2025. 2. 17. 21:36

 

호두의 것

 
역을 나오면서
호두과자와 땅콩과자 냄새가 좋아
엄마 생각이 난다
 
호두와 땅콩은 닮았고
땅콩은 호두와 불화해
 
종이봉투 안에서
불온전한 김이 솟는다
이런 추운 날엔 다정한 불화가 좋아
 
세상의 불행은
불운한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게 만들고
세상은 불의로 인해 굴러가지
 
입속에서 여러 번 구르며 잘게 부서지는 것
 
나는 쪼그려 앉아 호두를 깼을,
땅콩 껍질을 벗겼을
어떤 사람의 모습을 상상한다
 
호두, 누군가 심기로 결심하고 상상하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지금 내 나이보다도 일찍 엄마가 되었고
여전히 나의 하루를 궁금해하는 사람
 
엄마가 떠나고
나도 떠난 세상을 종종 그려보면
 
그것은 또 그것대로 좋을지도
 
호두의 전부를 안다는 것
그것은 호두의 고통을 껴안아본다는 것
 
단지 이 호두를 쥐고
손이 차가운 사람에게 가고 싶다
 
이 호두는 나무에 잘 매달려 있었겠지
햇빛과 바람과 폭우를 맞았겠지
 
그리고 지금 봉투 안에 따뜻하게 담겨 있다
 
호두는 슬픈 사람의 자세야
왠지 그런 생각이 든다
 
 

주민현, 「멀리 가는 느낌이 좋아」 에서
Michel delacroix 作

 
 
 
 

호두, 누군가 심기로 결심하고 상상하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나를 생각해 본다. 누군가 창조하기로 결심하고 상상하기 이전엔 존재하지 않았을 나를. 그 누군가로 인하여 지금 나는 여기에 숨 쉬며 살아가고 있다. 무언가를 향하여, 무언가에 이끌려..
 
 
지금 내 나이보다도 일찍 엄마가 되었고
여전히 나의 하루를 궁금해하는 사람
 
여전히 나의 하루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때론 귀찮으면서도 뒤돌아보면 감사한 일. 내게 하루가 궁금한 사람이 있다는 건 두고두고 행복한 일.
 
 
호두의 전부를 안다는 것
그것은 호두의 고통을 껴안아본다는 것

 
누군가를 온전히 알기 위해

그의 고통까지 껴안을 수 있어야 함을,
사랑이란 그러한 것임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이 호두는 나무에 잘 매달려 있었겠지
햇빛과 바람과 폭우를 맞았겠지
 
어쨌든 나는 태어났고,
나도 모를 햇빛과 바람과 폭우를 맞고 자라났고, 여기까지 왔지. 나는 바라, 누군가의 마음에 따뜻하게 담겨 있는 나이기를.. 그럴 수 있다면 살아온 인생이 충분할 것 같아.
 
 

 
 
 
 
 
 

- 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