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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이기적인 기도> 이해인 본문

위로가 되어 줄 시

시詩 <이기적인 기도> 이해인

His 제이 2024. 6. 26. 22:43

 

이기적인 기도

 
하느님
오늘은 몸이 많이 아프니
기도가 잘 안 되지만
되는대로 말씀드려 봅니다
 
앞으로의 남은 날들이
어느 날부턴가 누군가에게
짐이 될 거라 생각하면
종일토록 우울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은
스스로 사물을 분간하며
내 손으로 밥을 먹고
내 발로 걸어 다니는 것을
꼭 허락해 주세요
 
누가 무얼 물으면 답해주고
웃으면 같이 웃어주고
온전히는 아니어도
적당히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병명 없는 통증도 순하게
받아 안을 테니
오랜 세월 길들여 온
일상의 질서가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을 만큼
딱 그만큼의 건강과 자유는
허락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하느님
그동안 내내
남을 위해서만 기도했으니
오늘은 좀 이기적인 기도를
바쳐도 되는 거지요?
 

이해인 「꽃잎 한 장처럼」에서
Gary Bunt 作

 
 
「꽃잎 한 장처럼」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시. 그녀가 쓴 시 중에서 가장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시.
 
나를 돌보기에 앞서, 나를 위해 기도하기에 앞서, 늘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신념을 때론 내려놓고, 내 가슴이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되도록이면 자주.
 
나를 돌보시는 분이 그도 돌보신다. 자비와 사랑이 필요한 우리는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
 

- J -

 
 
 

 

 

 

 

시인 이해인 1945 ~